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터 쉴튼 (문단 편집) == [[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국가대표]] == [[파일:external/i4.mirror.co.uk/peter-shilton-lines-up-before-the-international-friendly-match-against-denmark-147975487.jpg]] 1970년부터 1990년까지 국가대표로 뛰었으며, 125경기로 잉글랜드 역사상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한 선수이다. 동독을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, 이른 나이에 [[고든 뱅크스]]의 서브 골키퍼 역할을 맡게 되었다. 1972년 뱅크스가 교통사고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자 [[레이 클레멘스]]와 경쟁 체제를 형성했다.[* [[레이 클레멘스]]도 대단한 월드클래스 골키퍼였는데,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[[1970년대]] [[리버풀 FC]]의 수문장이었다.] [[파일:external/news.bbcimg.co.uk/_70419834_shiltonletsshotin.jpg]] [[1974 FIFA 월드컵 서독|1974년 서독 월드컵]] 예선 최종전에서 저지른 실수는 굉장히 유명한데, 폴란드전에서 공을 흘리며 어이없는 선제골을 내줬다. 쉴튼은 자서전에서 이 실책을 20년 동안 대표팀에서 저지른 유일한 실책이라고 말했다.[* 하지만 밑에서 보듯이 몇 개 더 있다(...).] [[1970년대]] 잉글랜드 대표팀은 암흑기였고 쉴튼의 메이저 대회 데뷔는 [[UEFA 유로 1980]]이었다. 그러나 [[레이 클레멘스]]에게 밀려 이탈리아전을 제외하곤 출전하지 못했다. 포레스트에서의 성공으로 쉴튼은 클레멘스를 완전히 밀어내고 [[1982 FIFA 월드컵 스페인|1982년 스페인 월드컵]]에 주전 골키퍼로 출전했다. [[UEFA 유로 1984]]에는 잉글랜드 자체가 예선에서 탈락했고 쉴튼은 [[1986 FIFA 월드컵 멕시코|1986년 멕시코 월드컵]]에 출전했다. 그리고 8강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|아르헨티나]]전에서 [[디에고 마라도나]]에게 월드컵 역사에 남을 2골[* 흔히 [[신의 손|축구 역사상 최악의 골]]과 최고의 골이라고도 표현한다.]을 허용하며 패배했다. [[UEFA 유로 1988]]에서는 A매치 1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하였다. 그러나 잉글랜드는 이 대회에서 아일랜드의 레이 휴튼에게 결승골을 허용하고 네덜란드의 [[마르코 반 바스텐]]에게 [[해트트릭]]을 얻어맞는 등 갖은 굴욕을 맛보며 3전 3패로 탈락했다. [[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|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]]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으며, 잉글랜드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.[* 여담으로, 당시 '''40세'''로 해당 대회 최고령 참가자였다.] 4강 [[독일 축구 국가대표팀|서독]]전에서는 [[승부차기]]까지 가는 접전 끝에 탈락했고[* 경기가 120분의 혈투 끝에 무승부로 마감되자,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피터 쉴튼을 보유한 잉글랜드의 우세를 점쳤으나 당시 신인이었던 서독의 골키퍼 [[보도 일그너]]는 1개를 선방했고 쉴튼은 1개도 막지 못했다. 물론 당시 서독 키커들의 킥이 대부분 정확하고 날카로웠다.] 3·4위전 [[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이탈리아]]전에서는 어이없는 실책으로 [[로베르토 바조]]에게 선제골을 내주는 굴욕을 당했다. 이 대회를 끝으로 쉴튼은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